# 《능소화 피는 골목》 7화 - 편지 속의 마음

 # 《능소화 피는 골목》 7화 - 편지 속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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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와 국이의 사진


1984년 9월 15일, 오후 3시.


능소는 우체국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국이가 떠난 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편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왔다.


"능소야, 또 왔다!"


우체국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편지를 건네주었다. 서울 소인이 찍힌 하늘색 편지봉투였다.


"고맙습니다."


능소는 편지를 받자마자 능소화 골목으로 달려갔다. 편지는 항상 그 특별한 장소에서 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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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골목, 평소 앉던 벤치.


"사랑하는 능소에게,


서울 생활이 벌써 한 달이 되어가네. 대학교 수업도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생겼어. 하지만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어제는 명동에 갔었어. 네가 말한 대로 정말 사람이 많더라.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너만 생각났어. 언젠가 너와 함께 걸어보고 싶어.


요즘 경영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 나중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 


아, 그리고 네가 보내준 능소화 말린 것, 잘 간직하고 있어. 책갈피로 쓰는데 볼 때마다 고향 생각이 나.


거기 날씨는 어때? 서울은 벌써 가을바람이 불어. 감기 조심하고, 편지 기다릴게.


사랑하는 국이가


P.S. 다음 편지에는 서울 사진도 보낼게. 구경해봐."


편지를 읽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국이의 일상이 궁금했고, 그가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게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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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는 집으로 돌아가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국이오빠에게,


편지 고마워. 읽으면서 계속 웃었어. 오빠가 명동에서 나만 생각했다니, 그 많은 예쁜 서울 아가씨들 놔두고 말이야.


나는 요즘 대구 시립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 책 정리하고, 대출 도와주고...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제 재미있어. 책 읽을 시간도 많고.


어제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어. 우리 이야기 같더라.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들... 그런데 우리는 해피엔딩이 될 거야, 그지?


오빠가 말한 경영학 공부, 정말 대단해. 나도 뭔가 배우고 싶어졌어. 도서관 사서가 되려면 뭘 공부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중이야.


날씨는 많이 선선해졌어. 능소화도 이제 지기 시작하는데, 내년에 또 필 거라고 생각하니까 슬프지 않아. 우리 사랑처럼.


서울 사진 기대할게. 오빠 사진도 보내줘.


사랑하는 능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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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일요일 오후.


또 다른 편지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사진이 함께 들어있었다.


"능소야, 약속한 대로 사진 보내. 이게 우리 대학교야. 크지? 그리고 이게 내 기숙사 방. 좁지만 나름 아늑해.


요즘 과 선배들과 어울리느라 바빠. 다들 좋은 사람들이야. 특히 민수라는 선배가 있는데, 고향이 부산이라서 나랑 말이 잘 통해.


아, 그리고 중간고사 기간이라 요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해. 너도 도서관에서 일한다니까 뭔가 연결된 기분이야.


편지 쓰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하면서 마음도 정리되는 것 같아.


사진 속 내 모습 어때? 살 좀 빠진 것 같지? 서울 음식이 고향 음식만 못해서 그래.


네 사진도 보고 싶어. 다음엔 보내줘.


국이가"


능소는 사진을 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는 국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조금 야위어 보이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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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말, 능소는 마을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가씨, 누구한테 보낼 사진이가?"


사진관 아저씨가 물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요."


"남자친구지? 하하, 다 보인다."


능소는 얼굴이 빨개졌다.


"곱게 찍어드릴게요. 서울 친구가 깜짝 놀랄 거야."


사진관 아저씨는 친절하게 여러 장을 찍어주었다. 능소화 골목을 배경으로 한 사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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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능소의 편지.


"사랑하는 국이오빠에게,


사진 정말 고마워. 오빠가 다니는 대학교 정말 크구나. 나도 언젠가 가보고 싶어.


그런데 사진 속 오빠 많이 야위었어. 밥 제대로 먹고 있어? 걱정돼. 어무이가 김치 담아서 보내고 싶어 하시는데, 서울까지 가면 상할 것 같아서 못 보내고 있어.


나도 사진 찍어서 보내. 어때? 많이 변했지? 요즘 도서관 일 하면서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


오빠가 말한 민수 선배님께 안부 전해줘. 부산이 고향이라니 반가워. 경상도 사람들끼리는 정이 통하잖아.


나도 요즘 새로운 친구가 생겼어. 도서관에서 만난 수진이라는 언니인데, 대구에서 대학교를 다녀. 언니가 나보고 대학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 어떻게 생각해?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어. 감기 조심하고, 밥 꼭 챙겨 먹어.


사랑하는 능소가


P.S. 능소화 골목 사진도 함께 보내.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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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국이의 편지.


"사랑하는 능소에게,


사진 받았어. 정말 예뻐. 더 예뻐진 것 같아. 기숙사 친구들이 보고 다들 깜짝 놀랐어.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냐고.


대학교 가는 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넌 충분히 똑똑하고, 꿈도 확실하잖아. 도서관 사서가 되려면 문헌정보학과가 좋을 거야. 대구에도 좋은 대학들이 많아.


나도 네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나중에 만났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야.


요즘 학과 공부도 재미있어. 특히 마케팅 수업이 흥미로워. 나중에 사업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김치 걱정 고마워. 정말 그리워.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마음만으로도 충분해.


날씨가 정말 추워졌어. 너도 따뜻하게 입고 다녀. 감기 걸리면 안 돼.


국이가


P.S. 다음 주에 중간고사가 끝나면 더 자주 편지 쓸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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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 능소의 일상.


도서관에서 일하는 능소는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수진 언니와의 대화를 통해 세상에 대한 시야도 넓어지고 있었다.


"능소야, 정말 대학교 갈 생각이야?"


수진이 물었다.


"응, 언니. 국이 오빠도 가라고 하고..."


"그 서울 남자친구? 좋은 사람 같던데."


"어떻게 알아?"


"편지 받을 때마다 표정이 달라져. 그런데 대학교는 네 자신을 위해서 가야 해. 남자친구 때문이 아니라."


수진의 말에 능소는 생각에 잠겼다.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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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능소의 마음을 담은 편지.


"사랑하는 국이오빠에게,


요즘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 대학교 가는 것도 그렇고, 내 미래에 대해서도.


오빠 말대로 대학교에 가보려고 해. 하지만 오빠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책을 읽게 됐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더라. 그런 것들을 알고 싶어.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어. 내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면 오빠와 안 맞을까 봐.


바보 같은 걱정이지?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아. 오빠도 몸 따뜻하게 해. 곧 겨울방학이지? 집에 올 거야?


사랑하는 능소가"




12월 18일, 국이의 답장.


"사랑하는 능소에게,


네 편지를 읽고 정말 자랑스러웠어. 그렇게 생각하는 네가 너무 멋있어.


걱정할 거 없어. 우리가 각자 성장하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거잖아. 그런 우리가 만나면 더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서울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 그리고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 알게 됐어.


하지만 그런 넓은 세상에서도 네가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겨울방학... 미안해. 이번에는 못 갈 것 같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서.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대신 편지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 그리고 봄이 되면 꼭 갈게.


사랑하는 국이가


P.S.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낼 예정이야. 기대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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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우체국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서울에서 온 작은 상자였다.


집으로 돌아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니 작은 음악상자가 들어있었다. 뚜껑을 열자 "에델바이스"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함께 들어있던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능소에게,


멀리 있어서 직접 노래해줄 수 없지만, 이 음악상자가 대신 해줄 거야. 외로울 때마다 들어봐. 내가 너에게 노래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메리 크리스마스, 내 사랑.


국이가"


능소는 음악상자를 꼭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움과 사랑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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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 1984년 마지막 날.


능소는 능소화 골목에 나와 있었다. 능소화는 모두 져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봄이 오면 다시 필 것이다.


"1984년도 끝나가네..."


국이와 처음 만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주머니에서 국이의 편지들을 꺼내 보았다. 벌써 스무 통이 넘었다. 각각의 편지에는 그들의 사랑이 담겨있었다.


"1985년에도 잘 부탁해."


능소는 앙상한 능소화 가지에 대고 속삭였다. 새해에는 더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학교 입시 준비도 해야 하고, 국이와의 사랑도 계속 키워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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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화 예고 **


*"1985년이 됐다 아이가... 벌써 국이 오빠가 간 지 반년이 넘었네. 편지는 계속 오는데, 뭔가 예전 같지가 않아. 서울 생활이 바쁜가 보다. 나는 대학교 준비하느라 정신없고... 그런데 이상하게 불안해. 혹시 오빠 마음이 변한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편지 오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데... 우리 사랑 괜찮을까? 다음 화 '소식이 끊어지다'에서 확인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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