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피는 골목》 5화 by kuk

  5화 - 편지와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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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 와 국이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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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17일, 아침.


능소는 국이가 써준 편지를 받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어젯밤 늦게 할머니 댁 앞 우편함에 넣어둔 편지였다.


"사랑하는 능소에게..."


편지지에 정성스럽게 쓰여진 국이의 글씨를 보며 능소는 미소를 지었다. 서울에 가서도 매일 편지를 쓰겠다는 약속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능소야, 밥 먹어라!"


어머니의 부름에 편지를 가슴에 꼭 안고 식탁으로 향했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


"그냥..."


"국이 그 친구가 편지라도 써줬나?"


어머니의 눈치가 너무 빨랐다. 능소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사귀는구나."


"어무이..."


"괜찮다. 어무이도 젊을 때가 있었다 했잖아. 그런데 일요일에 서울 간다며?"


"응..."


갑자기 현실이 다가왔다. 이제 시간이 얼마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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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능소화 골목.


능소는 평소보다 일찍 나와 국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밤새 써놓은 답장이 들려 있었다.


"능소야!"


국이가 골목 저편에서 뛰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일찍 나왔네?"


"응, 편지 고마워."


능소가 부끄러워하며 답장을 건네자 국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도 썼어. 밤새 썼어."


"정말? 고마워."


둘은 나란히 앉아 서로의 편지를 읽었다. 국이의 편지에는 어젯밤의 감격과 앞으로의 다짐이 담겨 있었고, 능소의 편지에는 수줍음과 걱정이 함께 적혀 있었다.


"능소야, 내가 서울에 가면 매일 편지 쓸게. 너도 써줄 거지?"


"응, 써줄게."


"약속이야."


국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능소도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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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능소야, 우리 사진 찍어볼까?"


"사진?"


"응, 기념으로. 할머니께 카메라 빌려달라고 했어."


국이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1980년대 중반의 일반적인 필름 카메라였다.


"나는 사진 잘 못 나와..."


"괜찮아, 넌 어떻게 찍어도 예뻐."


국이의 말에 능소는 얼굴이 빨개졌다.


"여기서 찍자."


능소화가 활짝 핀 담벼락을 배경으로 둘은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능소도 국이의 농담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제 나도 찍어줘."


"나는 카메라 다룰 줄 몰라..."


"괜찮아, 쉬워."


국이가 능소에게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손이 닿을 때마다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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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마을 뒷산.


"능소야, 오늘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보자."


"더 높은 곳?"


"정상까지. 거기에 예쁜 바위가 있다고 들었어."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산길을 올라갔다. 가파른 길이었지만 함께라서 힘들지 않았다.


"힘들지 않아?"


"괜찮아. 너랑 있으니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큰 바위 위에 올라서니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와... 정말 예쁘다."


"그렇지? 여기서 보면 우리 마을이 정말 작아 보여."


"작지만 따뜻해."


국이가 능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처럼."


"뭐?"


"네가 이 마을처럼 작지만 따뜻해."


능소는 또 얼굴이 빨개졌다. 국이는 정말 말을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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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며 둘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능소야, 나중에 서울에 놀러올 래?"


"서울에? 나는 서울 같은 큰 도시는 무서워..."


"괜찮아, 내가 다 안내해줄게. 지하철도 타보고, 명동도 가보고..."


"정말?"


"당연하지. 그리고 너도 대구에서 공부 더 하고 싶지 않아?"


"공부?"


"대학교 말이야. 넌 충분히 똑똑해."


능소는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마을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나는 그냥 마을에서 살면 돼..."


"아니야, 넌 더 큰 세상을 봐야 해. 내가 도와줄게."


국이의 말에 능소는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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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오빠야, 서울에서 나 잊지 않을 거지?"


"바보야, 어떻게 잊어. 너는?"


"나도 잊지 않을게."


"진짜 약속이야."


"응, 진짜 약속."


두 사람이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하는 순간, 바람이 불어 능소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국이가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능소야..."


"응?"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또 있어."


"뭔데?"


국이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사랑한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능소에게는 크게 들렸다. 17살 소녀에게는 너무나 큰 말이었다.


"나도..."


"뭐?"


"나도... 사랑해."


능소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지만, 국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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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갈 때쯤 둘은 산에서 내려왔다. 내일이면 국이가 떠나기 전 마지막 하루가 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능소야, 내일 뭐 하고 싶어?"


"음... 그냥 너랑 있고 싶어."


"나도 그래. 하루 종일 함께 있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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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능소화 골목.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아쉬웠다.


"능소야, 이거."


국이가 작은 상자를 꺼냈다.


"뭐야?"


"선물이야. 열어봐."


상자 안에는 작은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펜던트는 능소화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예뻐?"


"응... 정말 예뻐. 언제 샀어?"


"오늘 오전에 대구 시내 나가서 샀어. 능소화랑 똑같이 생겼지?"


"고마워... 정말 고마워."


능소는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채워줄게."


국이가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채워주었다. 목 뒤로 돌아가는 국이의 손길에 능소는 온몸이 떨렸다.


"예쁘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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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야, 나도 너한테 받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나는 돈이 없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뭔데?"


국이가 주머니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너의 글씨로 쓴 편지. 내가 서울에서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게."


"그런 거면 얼마든지..."


능소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국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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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봐."


"응, 내일 봐."


이번에는 국이가 능소의 손을 잡고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어제의 이마가 아닌, 손등이었다.


"좋은 꿈 꿔."


"너도..."


국이가 사라진 후에도 능소는 한참 동안 손등을 바라보았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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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온 능소는 어머니에게 목걸이를 보여주었다.


"예쁘네. 국이가 사준 기가?"


"예."


"값비싸 보이는데... 그 친구가 참 마음이 깊네."


"어무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일이면 떠나는데..."


어머니가 딸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능소야, 진짜 사랑이면 거리는 상관없어.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돼."


"정말?"


"그럼. 어무이도 그랬거든."


"어무이도?"


"응, 너 아부지하고 만났을 때 말이야..."


어머니의 옛 이야기를 들으며 능소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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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능소는 긴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국이오빠에게,


오늘 하루도 정말 행복했어. 목걸이 고마워. 너무 예뻐서 계속 만지고 있어.


내일이면 너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구나.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


하지만 어무이가 그랬어. 진짜 사랑이면 거리는 상관없다고. 우리 사랑이 진짜라면 서울과 대구 사이의 거리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매일 편지 쓸게. 너도 꼭 써줘. 그리고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자.


능소화처럼 우리 사랑도 해마다 피어나길 바라며...


사랑하는 능소가"


편지를 다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일은 아쉽지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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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할머니 댁에서 국이도 편지를 쓰고 있었다.


"사랑하는 능소에게,


내일이면 헤어져야 한다니 믿기지 않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깊이 사랑할 수 있을 줄 몰랐어.


목걸이 잘 어울리더라. 그걸 보면서 항상 나를 생각해줘.


서울에 가서도 매일 편지 쓸게. 그리고 방학 때마다 올게. 기다려줘.


우리의 사랑이 능소화처럼 아름답고 오래 가길...


영원히 사랑하는 국이가"


국이도 편지를 쓰고 나니 조금 마음이 정리되었다. 내일은 이별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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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방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내일이면 정말 헤어져야 하는 걸까? 


능소화가 피어있는 한 그들의 사랑도 계속될 수 있을까?


마지막 하루를 앞두고 두 사람의 마음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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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화 예고 (국이의 목소리로)**


*"내일이면 정말 떠나야 해... 능소와의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평생 기억에 남을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 버스터미널에서의 마지막 인사, 그리고 능소화 한 송이... 과연 우리 사랑은 이 이별을 이겨낼 수 있을까? 다음 화 '이별의 아침'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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